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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과 생각을 남길 곳

블로그를 만들기로 했다.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하면서 매번 무언가를 찾아보고 결정하는데, 그 과정을 작업이 끝날 때마다 흘려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결과물은 남아 있어도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졌다. 분명 전에 고민했던 문제인데, 어디에 정리해 둔 것이 없어 처음부터 다시 찾아보는 일도 있었다.

그때그때 기록하면 되겠지만 혼자 보는 메모는 대체로 짧았다. 당시의 나는 알고 있으니 설명을 생략했고, 나중의 나는 그 설명이 없어서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읽는다고 생각하고 쓰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였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적어도 앞뒤 사정은 남길 테니까.

광고를 붙여 소소하게 수익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보다 먼저, 계속 글을 남기고 싶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름부터 고민했다. 몇 가지를 생각하다가 그동안 사용해 온 이름들을 연결해 봤다. Peter, Walter, Paul. Peter Walter Paul. 로고는 첫 글자를 따서 PWP로 만들면 되겠다 싶었다.

생각해 보니 여러 이름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내가 하는 일과도 닮아 있었다. 나는 기획을 하고, 디자인을 하고, 개발도 한다. 무엇을 만들지 정하다가 화면을 그리기도 하고,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해 코드를 쓰기도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 나를 소개하면 나머지가 조금씩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이름마다 역할을 하나씩 붙일 생각은 없다. 그저 내가 사용했던 이름들 아래 지금 하는 일들을 모아두면 되겠다 싶었다. 앞으로 관심사가 달라져도 이름까지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도메인은 pwp.co.kr과 peterwalterpaul.com 사이에서 고민했다. 짧은 주소는 입력하기 편하고 로고와도 잘 맞았다. 긴 주소는 이름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다. 영어로도 글을 써보고 싶었고, 이왕 정한 이름을 줄이지 않고 사용하는 쪽에 마음이 갔다.

주소 하나를 두고 꽤 오래 고민했다. 남이 보기에는 별 차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오래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워드프레스를 설정하면서도 비슷한 선택이 이어졌다. 기본으로 연결되는 그라바타는 꼭 필요한지, 댓글은 어떤 구조로 보여줄지, 스팸 방지 기능은 두어야 할지 하나씩 살펴봤다.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기능들도 내 블로그에 넣으려니 다시 생각하게 됐다.

댓글은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남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대신 댓글 아래로 대화가 이어질 때 누구의 말에 답한 것인지 알아보기 쉬웠으면 했다. 광고는 본문과 본문 끝, 사이드바 정도를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화면이 복잡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읽을 글이 먼저 보이고, 필요한 기능은 그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설정을 만지다 보니 정작 무엇을 쓸 것인지가 남았다.

작업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 범위가 애매했다. 방법만 설명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게 된 사정까지 적을 것인지. 개발 이야기를 하다가 디자인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가끔은 별다른 결론 없이 생각만 남겨도 괜찮을지.

개인 블로그인데도 어느 순간부터 주제를 정하고 글의 쓸모를 따지고 있었다.

물론 처음 방문한 사람은 내 하루보다 자신이 찾던 답에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오늘 워드프레스 설정을 바꿨다”는 한 줄보다는 무엇이 불편했고 어떻게 바꿨는지를 적은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검색할 때는 누군가의 근황보다 내 문제를 해결할 설명을 먼저 찾는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읽다가 다음 글까지 눌렀던 때를 생각해 보면, 꼭 정보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한 이유가 납득되거나, 나와 비슷한 부분에서 불편함을 느꼈거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필요한 답을 얻고 나서 글을 쓴 사람이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 선택의 이유까지 적어도 되겠다 싶었다.

나는 워드프레스 작업을 할 때 플러그인을 가급적 줄이는 편이다. 직접 관리할 사이트라면 무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어서다. 물론 그 때문에 더 오래 걸릴 때도 있다. 빠르게 설치해서 끝낼 수 있는 일을 굳이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니, 언제나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런 조건을 적어두면 읽는 사람은 판단하기 쉬울 것이다. 나처럼 구조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고, 당장 운영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방법만 적었을 때 빠지는 설명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알아본 것과 직접 해본 것은 구분해서 쓰고 싶다. 오늘 살펴본 그라바타 제거 방법도 실제로 적용하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검토 중인 방법이다. 코드를 넣었다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지까지 확인해야 작업 결과로 남길 수 있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글에는 어디까지 시도했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적으면 되겠다. 나중에 해결하면 이어서 쓰고, 생각이 바뀌면 바뀐 이유를 남기면 된다. 모든 글이 처음부터 완결돼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냥 생각을 적는 날도 있었으면 한다. 작업과 관계없는 이야기나 아직 설명하기 어려운 고민까지 매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바꾸고 싶지는 않다. 읽는 사람을 의식하되, 그 때문에 쓰고 싶은 것을 전부 걸러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당분간은 내가 실제로 하는 일에서 시작해 볼 생각이다. 작업 중 막힌 부분, 비교했던 방법, 선택한 이유를 남기고 싶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었을 때 당시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는 써두려고 한다.

지금은 이름과 주소를 정하고, 댓글과 화면 구성을 하나씩 살펴보는 중이다. 아직 글보다 설정에 쓰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도 오늘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조금 정리됐다. 다음에 또 같은 고민을 하게 되면, 적어도 이 글부터 읽어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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